2020. 4. 30. 20:47ㆍ[아름다운문화재]/보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서, 국립익산박물관 특별전에서 관람...
[전시 안내문]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지 출토 사리장엄
7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1,2)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3,4)
통일신라 872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1870호(5)
640년 당에서 귀국한 자장이 선덕여왕에게 건의하여 지은 황룡사의 구층목탑 안에 안치되어 있었던 사리장엄입니다.
황룡사의 구층목탑은 당시 신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게다가 불에 타서 심초석이 드러난 채 방치된 적도 많아서 항상 도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기 모인 사리장엄 중에도 도굴되었다가 회수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사리 구멍 안쪽에 남아있던 금동판(사리내합)에 명문(찰주본기)이 새겨져 있어서 645년과 872년,두 차례에 걸쳐 사리가 안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ㅇ 지정번호 : 보물 제1870호
ㅇ 지 정 일 : 2015. 04. 22
ㅇ 상세설명 :
황룡사찰주본기는 통일신라 경문왕 11년에 왕의 명에 의해 중심사찰이자 성전사원인 황룡사의 구층목탑을 중수하면서 기록한 실물자료이다. 구층목탑의 건립 과정과 중수 과정을 후대의 역사서歷史書가 아닌 중수 당시에 제작된 유물을 통해 생생히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본기는 박거물이 찬하고 요극일이 썼으며 이를 승려인 총혜와 조박사 연전이 전각한 것이다. 특히 황룡사 목탑 건립과 관련하여『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 후대의 史書 기록과 상호 비교 검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찰주본기의 역사적·기록사적 위치는 매우 크다. 금동사리함의 내외면에 쌍구체雙鉤體로 쓴 찰주본기는 9세기대에 주로 쓰였던 서체로 염거화상탑지廉巨和尙塔誌(844년), 중화3년명사리기中和 3年銘 舍利器(883년) 등과 더불어 이 시기 유행했던 탑지塔誌의 서술체계는 물론 서체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외에도 사리장치 품목과 안치장소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탑파의 사리장엄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사리함의 문비 내․외면에 선각된 신장상은 절대연대(872년)를 가진 유품으로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된다. 따라서 이 황룡사 금동사리함은 신라시대의 시대상과 불교사 등 담고 있는 역사적 유물로서의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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