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에서도 청자를 생산하다. 진천 죽현리 청자가마터

2014. 1. 26. 02:27[아름다운문화재]/발굴유적

흔히 청자하면 떠오르는 건 전라남도 강진 등지에서 생산된, 박물관에 진열된 운학문이 멋드러지게 그려진 소위 비색의 상감청자나, 간혹 뉴스를 통해 접하는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청자운반선에서 발견된 다량의 청자들 정도가 생각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권세가나 가질 수 있었던 고급청자나 수출용 청자 외에 일반 백성들이 사용했던 청자도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생산을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그처럼 일반인들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는 청자를 만들었던 가마터 중 한 곳입니다. 바로 진천 죽현리에서 발견된 청자가마터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마의 대부분이 오랜 시간에 걸친 지형변화 때문에 남아 있는 부분은 썩 훌륭하지가 않습니다.

 

 

지금까지 충청북도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청자가마터는 단 두 곳 뿐입니다. 다른 한 곳은 1999년도에 골프장 건립과 관련해서 조사가 이루어진 음성 생리 청자가마터이고, 진천 죽현리 청자가마터는 안성-음성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해서 2004년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찾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가마에서는 12세기 전후에 청자를 생산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략 유적의 전경입니다. 딱 보기에도 여느 훌륭한 유적처럼의 뽀대는 없어 보입니다. 청자가마와 폐기장 몇 곳, 그리고 맨 오른쪽에 청자를 생산하던 시기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들어진 석곽묘가 발견되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면... 

보이는 바와 같이, 뒷부분이 거의 다 사라진 청자가마와 폐기장들이 몇 곳 남아 있었습니다. 폐기장은 가마 주변에서 가마를 짓기 위해 흙을 파 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구덩이에 소위 불량품으로 생산된 청자들을 깨버리면서 퇴적된 곳들입니다. 

 

청자가마의 약간 측면 모습입니다. 불을 지피던 아궁이와 성형한 그릇을 재워 구웠던 첫번째 소성실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반대 측면에서 본 모습입니다.

 

그릇을 재워서 구웠던 소성실의 바닥면입니다. 저렇게 잘라서 층을 확인해 보면 대충 몇 번 정도 불을 때서 청자를 생산했었는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이 가마의 경우는 그리 오래 사용된 거 같지는 않습니다.

 

아궁이에서 불이 소성실로 넘어가는 불턱 부분입니다. 진흙을 개어서 손으로 발라 만든 것이 확실히 확인되는데요, 손가락으로 슥슥 발라 다듬은 손자국이 남아 있네요. 불에 익어서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굳어져 남겨진 고려인들의 손자국입니다. 이 불턱 부분도 케잌처럼 잘라보면... 

부서질 때마다 몇 번을 흙을 발라 고쳤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가마 옆에 있던 폐기장의 퇴적상황입니다. 옛날에 쓰던 그릇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유행을 타게 되는데, 저런 폐기장에 쌓인 폐자기들을 아래부터 위로 형태나 문양 같은 세세한 변화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연구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해서 가마에서 대략 언제부터 언제까지 생산활동을 했는지 추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어떤 청자들이 발견되었는지 한 번 구경해 보겠습니다.

가장 많이 쓰던 종류의 그릇들입니다. 위쪽이 대접들이고, 아래쪽은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접시들입니다.

 

여기에서 위는 발 종류인데, 대접과 비슷한 크기지만 형태에서 약간 틀리기 때문에 다른 종류로 구분됩니다. 아래는 잔과 여러 형태의 뚜껑들입니다.

 

이 사진의 위는 청자가마에서 함께 생산된 고려시대 백자입니다. 보통 백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고려시대에도 일반적으로 청자를 만들던 회색이나 짙은 회색을 띠는 흙과는 다른 백색을 띠는 흙으로 만든 백자도 만들어졌습니다. 후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조선시대에도 한 동안은 청자도 만들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사진 아래는 도지미 혹은 도침이라고 하는데, 소성실에 그릇을 재울 때 그릇을 올려 놓던 받침입니다. 중간에 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형태의 도지미가 있는데, 실제로는 저렇게 쐐기형태로 만들어진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왜냐면 가마 바닥이 경사져 있어 저렇게 받침으로 수평을 맞춰야 그릇을 제대로 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요상한 건 뭐냐면... 가마 속에서 어떻게 그릇을 쌓아서 구웠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하겠습니다. 가마 속에서 한쪽으로 기울어 서로 들러붙은 상태로 구워져 불량품으로 만들어져 버려졌던 것입니다. 저렇게 그릇 놓고 받침 받치고, 또 그릇 올리고 받침 받치고...

 

끝으로 청자 생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석곽묘(돌무덤)가 함께 발굴조사되어 소개합니다.

이 석곽묘는 진천지역이 신라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던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보통은 저렇게 큰 돌로 장방형의 묘광을 만드는데 한쪽에 큰 암반에 걸려 그쪽은 그대로 암반을 벽으로 사용한 거 같습니다. 바닥에는 잔돌들을 깔아 시상대를 마련하고 시신을 안치했습니다.  

 

석곽묘에서 발견된 토기들입니다.

 

간단히 청자가마터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은 시간이라 두서가 없는 느낌입니다. 나중에 공부 더 해서 쫌식 수정해야겠습니다.

<자료 출처 : 중원문화재연구원>

 

지금은 당연히 고속도로 공사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죽현리 청자가마터 자리는 현재 안성-음성간 고속도로의 안진터널 바로 입구 근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