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문화재]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46호)

2016. 1. 17. 21:48[아름다운문화재]/보물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은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약 200미터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2구의 석불이다.

두 석불 사이에는 익산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하천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동고도리와 서고도리로 나뉘어진다.

고도리 하면 고스톱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옛 고古, 도읍 도都. 백제의 큰 도읍이 있었던 동네였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지 싶다.

석조여래입상(이하 석불)은 1963년 1월 21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동고도리 석불에서 서고도리 석불을 바라보다(드론 팬텀3 촬영).

 

오른쪽이 동고도리 석불, 강 건너편에 서고도리 석불이 좌우대칭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드론 팬텀3 촬영).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약 200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상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冠 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정이다. 목은 무척 짧게 표현되어서 어깨와 얼굴이

   거의 붙어 있는 셈이다.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도포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없이 몇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와 불상을 같은

   돌에 새겼는데, 앞면을 약간 깍아 대좌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다리꼴의 돌기둥 같은 신체나 비사실적인 조각수법이 마치 분묘墳墓의 석인상石人像과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불상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로 보인다.

 

 

전해오는 전설처럼, 자세히 보면 확실히 남녀상이 구분된다.

예쁘장하니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동고도리 석불이 여자상, 콧수염과 턱수염이 살랑거리는 서고도리 석불이

   남자상이다. 석불의 전체적인 형태나 마주보고 있는 형태, 그에 따른 전설 등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석불보다는

   장승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먼저 동고도리 석불을 둘러보자.

 

 

 

 

 

 

 

표정 이쁘시네^^.

 

 

동고도리 석불 옆에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조선 철종 9년(1858)에 익산군수로 부임해 온 최종석이 넘어져 있던

   석불을 현재 위치에 일으켜 세울 때 썼다는 <석불중건기>이다.

그 내용은 "금마는 익산의 구읍자리로 동서북의 삼면이 다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유독 남쪽만은 터져 있어

   물이 다 흘러나가 허허하게 생겼기에 읍 수문의 허를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금마의 주산인

   금마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말에는 마부가 있어야 하므로 마부로서 인석人石을 세웠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북-》).

 

동고도리와 서고도리의 경계인 익산천을 건너는 다리.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듯하다. 멀리 서고도리 석불이...

 

서고도리 석불을 둘러보자.

 

 

 

멋진 콧수염을 휘날리고 있다.

 

 

 

 

 

 

석불이든 장승이든, 주위에 복을 내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