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9. 18:25ㆍ[아름다운문화재]/국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소장품으로, 4월까지 국립익산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다.
[특별전 전시 안내문]
백제 577년 ㅣ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소장 ㅣ 국보 제327호
2007년 부여 왕흥사지에서 발견된 청동, 은, 금의 삼중 사리장엄입니다. 가장 바깥쪽 청동 사리함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577년 백제의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공양한 사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사리를 공양하려 하였을 때, 놀랍게도 사리는 기적을 일으켜 2과였던 것이 3과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적을 보인 사리는 순도 99%가 넘는 은제 사리병과 금제 사리호 안에 귀하에 안치되었지만, 발견 당시에는 사리는 사라지고 맑은 물만 남아있었습니다.
정유년(577) 2월 15일 백제 창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을 세웠다. 본래 사리가 2매였는데,
묻을 때는 신기하게 3매가 되었다.
뚜껑 손잡이 주변의 연꽃무늬를 놓치지 마세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ㅇ 지정번호 : 국보 제327호
ㅇ 지 정 일 : 2019. 06. 26
ㅇ 소 재 지 : 충청남도 부여군 충절로 2316번길 34(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ㅇ 시 대 : 577년(백제 위덕왕 24)
ㅇ 상세설명 :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07년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유물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리기이다. 부여 왕흥사지王興寺址라는 출토지가 분명하고 청동제 사리합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577년(위덕왕 24)에 제작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절대연대가 확실할 뿐 아니라『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문헌기록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이다.
해당 유물은 백제 사비시기 위덕왕威德王에 의해 제작된 왕실 공예품으로서 공예사적 가치가 높으며, 죽은 왕자를 위해 발원된 기년명紀年銘 사리장엄구로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공예사적인 측면에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전반적인 형태와 세부 구조물을 주조하고 접착한 기법과 표면을 깎고 다듬는 기법 등에서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어 백제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단순하고 단아한 형태와 보주형寶珠形 꼭지, 그 주위를 장식한 연꽃문양 등을 통해 525년 조성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銀製托盞 등의 영향을 받아 7세기 전반 미륵사지 사리기에 조형적으로 영향을 끼친 6세기 후반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사유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절대 연대 및 백제왕실 공예품이라는 역사적․예술적 가치,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 제작 사리기라는 희소성, 우리나라 공예 및 조형예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 국보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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