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문화재] 이병기선생 생가(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

2016. 1. 24. 22:27[아름다운문화재]/기념물


대표적인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선생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분들이 있을까. 

솔직히 이름 말고는 나조차도... 40여년을 국어를 쓰고 살면서 이제서야 여길 가보다니...

이병기선생 생가는 전북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원수리),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다.

1973년 6월 23일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기념비 뒤로 생가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병기선생 생가 안내문]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1968)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사랑채/헛간/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태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 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국문학자이자 시조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생가이다.
시조의 현대적 혁신과 부활을 위한 새 운동을 전개하며 고전 발굴 연구에 힘쓴 가람은 청소년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말과 글을 보존하는데 노력하였다. 주된 공적은 시조에서 이루어졌지만 서지학과 국문학 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신재효의 판소리 등을 발굴 소개한 공로는 크다.

주요 저서로 『가람시조집』, 『국문학개론』 등이 있다.
가옥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 광채와 모정 등이 남아 있다. 모정 앞쪽에

작은 연못이 2곳 있다. 본디 초가지붕이며 건물 자체에는 특징이 없으나 안채와 사랑채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며, 모정과 연못을 배치하는 등 조촐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가는 이런 배치이다. 한 눈에 보려면 역시 하늘로 떠야...

드론 팬텀3로 전경을 담아봤다.


넓은 주차장 뒤로 생가가 있고, 옆에는 민가 두 채가 함께 자리해 있다.

생가 뒤쪽으로 보이는 묘 중 가운데 묘에 선생이 쉬고 계신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옹색하지도 않은 아담하고 소박한 가옥이다.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는 맛도...


대문이 있는 사랑채.


사랑채 끝에 있는 정자인 승운정.


승운정 옆에는 탱자나무가 있는데,


이 탱자나무는 이병기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시기를 기준으로 20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전라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사랑채 중간에는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 한다는 뜻의 수우재 현판이 걸려 있다.


들어선다. 한옥이 이쁜 건 가끔 보여주는 저런 자연스러움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선생의 사진이 직접 방문객을 맞아 주신다.


한쪽에는 선생의 시들도 걸려 있다.


안쪽 마당 뒤쪽에서 본 전경.


안쪽 마당 앞쪽에서 본...


'ㄱ'자형 안채의 모습.


저 부엌문 옆의 휘어진 기둥. 넘~후 이쁘다.



곳곳에 자연스러움이 묻어 있다. 문 왼쪽의 휘어진 기둥을 왜 잘린 채로 찍은거니...


안채 서쪽 툇마루 넘어 안을 보니 방금 손님들이 찾아와 담소를 나누다 떠난 듯한, 연출인데...

술병에 찻잔은 좀 아니잖아... 아닌가? 격식과 틀에 박힌 걸 깨라는 메시진가?



이 사진 하나는... 맘에 든다.


안에서 본 사랑채.


사랑채에서 본 안채.


장독대와 헛간채.



마당 끝에서 발견한 거대한 장기알(?).


어쩜 절대 움직이지 않는 세계 최대의 장기알일지도...^^


선생의 동상은 주차장 북동쪽 끝에 서 있다.


이병기선생의 묘소.


선생의 묘소는 동상의 옆쪽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이병기선생의 생가도 꽃피는 계절에 다시 찾으면 전혀 새로운 모습을 담을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