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4. 20:30ㆍ[아름다운문화재]/문화재자료
보령성곽은 '보령읍성'으로도 불리며,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266번지 일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이다.
1984년 5월 17일에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성 안에는 현재 보령중학교와 주포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 종착지는 현재 정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남문 앞이다.
[보령성곽 안내판 1]
보령읍성은 1430년(세종 12) 순찰사 최윤덕이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고 보령현감 박효성, 서산군수 박눌생
등이 힘을 합하여 완성한 석성石城이다. 성내에는 3개소의 우물이 있었으며 적대 8개소, 성문 3개소,
옹성 2개소 등이 있었다. 성돌에 천안, 단양, 제천 등의 충청도 군현 명칭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축성
당시 여러 지역의 인력이 동원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령읍성의 정문인 해산루의 현판은 보령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의 글씨라 전해진다.
[보령성곽 안내판 2 -보령시-]
성城은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큰 담이다. 이 성은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쌓은 봉당성鳳堂城(혹은 고남산성古南山城이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위치에 1430년(세종 12년)에 이미 있던 성을 보강하여 쌓아 만든 것이다. 성을 쌓는 방법은 안팎 양면을 돌로 쌓아 올렸고, 남문 터의 왼쪽과 오른쪽을 제외하고 나머지 성벽은 바깥쪽만 돌로 쌓아 올렸다. 성의 규모는 둘레 630여m, 높이 3.5m이고, 성에는 적대敵臺(성벽에 달라붙은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던 곳) 8개소, 남.북.동문 3개소, 우물 3개소 등이 있었다. 1432년에 제민당濟民堂.공아公衙.병기고兵器庫 등 140여칸 규모의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전쟁 등을 거치면서 파손되고, 남문인 해산루海山樓 옆 성벽 약 70m와 북쪽 성벽 약360m 만이 보존되어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충남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는 보령성곽은 조선 태종 원년(1400) 봉당성을 없애고,
세종 12년(1430) 최윤덕·박안식이 새로 터를 잡아, 서산군수 박눌생·보령현감 박효성과 힘을 합하여
돌로 쌓아 올린 성이다.
세종 13년(1431)에 부임한 현감 정대鄭帶가 이듬해 부터 성 안에 140여 간의 관아건물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문헌에 성의 둘레 630m, 높이 3.5m이며, 성문 3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인 옹성 2개가 있고, 성안에 우물 3개, 성밖에 주위에 물길을 만든 도랑 600m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성안에는 주포초등학교와 보령중학교가 있고, 동쪽과 북쪽에는 성벽이 잘 남아있으며, 보령현 정문인
해산루가 보존되어 있다.
남문인 해산루의 모습. 성 문의 종류에 따라서 개거식, 평거식(성벽과 바로 이어지는 편평한 천장이 있는 형태),
홍예식(터널처럼 생긴 형태), 현문식(성벽 위에 출입문이 설치된 형태) 등이 있는데,
이 남문의 형태는 개거식이다.
남문 옆 성벽 앞에는 여러 비석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남문에서 남서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툭 튀어나온 적대. 복원된 것으로 보이는데,
보통 적대는 문 바로 옆에서 출입문의 출입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데, 요건 너무 떨어져 있어 왠지
고증이 제대로 된건가 하는 의문이 살짝 든다.
문의 기둥을 받치는 장초석이 올려진 받침돌. 받침돌 바로 뒤에 양쪽 모두 '확'이라는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대문의 한쪽 축을 꽂아 문을 여닫기 위한 것인데, 저기에 문을 꽂았을 때 여닫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으로 보아 복원이 좀 잘못된 듯 하다.
안쪽에서 본 남문의 모습. 안에 있는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정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해산루로 올라가는 출입계단.
남문을 살폈으니 성을 한 바퀴 돌아보자.
보령중학교 뒤쪽으로 넘어가면 서쪽 성벽으로 이어진다. 바깥쪽(왼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만 쌓았다.
돌로 쌓은 외벽.
북쪽 성벽의 모습.
북쪽 성벽을 조금 따라가다 보면, 북문의 흔적이 나타난다.
북문...터 라고 하는게 맞겠다. 저 곳에도 남문과 같은 누각이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문에서 왼쪽에 앞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 적대라고 생각된다.
북벽에서 동벽으로 이어져 넘어가는 성벽 부분은 돌로 쌓은 외벽 등 꽤나 복원되어 있는 상태이다.
동벽(실제로는 남쪽에 좀 더 가까운 남동쪽) 부분은 곡선형태를 띠고 있다.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
동문터인데, 휘어져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적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문터의 출입구 부분.
성벽을 따라서 한 바퀴 돌아도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정말 가벼운 산책길로도 손색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안에 들어서 있는 학교들을 좋은 곳으로 옮겨주고, 성내에 대한 조사가 정식으로 이루어져
해미읍성 같은 다른 복원된 읍성들처럼 예전의 본모습을 조금이라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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