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문화재]/사적

[익산 문화재]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파봐야안다2 2016. 1. 20. 00:05

 

익산 미륵사지는 너무나도 잘 알려졌다시피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한 백제 최대의 사찰이다. 

미륵사지는 미륵산 남쪽 아래 평탄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1966년 6월 22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미륵사지에 대한 포스팅은 이미 몇 꼭지를 올렸으나, 이번에는 총정리(?)하는 셈 치고... 그래서 좀 깁니다^^

 

북동쪽 상공에서 내려다 본 미륵사지 전경(드론 팬텀3 촬영).

드론으로 촬영한 좀 더 많은 사진들은 요기요(http://blog.daum.net/dojasa/16794870)^^.

 

 

우선 미륵사지 전체에 대한 모습은 아래 두 장의 안내도를 참고하시길...

 

 

정문을 통해 입장을 하면,

 

발길은 자연스럽게 미륵사지유물전시관으로 먼저 향하게 된다. 다른 사지들과 마찬가지로,

관람시 먼저 유적부터 보게 되면 석탑 같은 몇 개의 눈에 차는 유물들 말고는 대부분 건물이 있던 터만

정비되어 있어 다소 실망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유적을 보고 싶더라도 전시관이 준비되어 있는

곳이라면 꼭 먼저 전시관을 둘러보고 유적을 관람하시길 추천한다.

 

전시관 안에는 이렇게 흥성했을 당시의 미륵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약간의 상상력은 가미되었겠으나...

 

미륵사지 석탑(서쪽(서원)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금동향로(전시된 것은 복제품임)로서,

보물 제17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시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으시면, 요기요(http://blog.daum.net/dojasa/16794871)^^.

 

 

미륵사지 경내를 둘러보기 전에 미륵사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베껴본다.

 

 

[미륵사지 안내문]

미륵사는 백제(기원전18년~기원후660년)시대의 가장 큰 사찰로,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금제사리봉영기'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위에 오른 서동이 왕비 선화와 함께 사자사獅子寺에

가던 중 용화산(현재 미륵산) 아래의 한 연못에 이르자 물속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다. 선화비의 간청으로

연못을 메워 탑과 불전을 각각 세 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미륵사지 석탑(서원석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영기'에는 백제 무왕 639년 왕비였던 사탁적덕沙탁積德의 딸이 발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규모가 커진 미륵사는 조선 중기인 1600년경까지 사찰의 기능을 이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용화산 아래 3원의 가람 배치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성불하여 용화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설법을

베출어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독특한 가람 배치 외에 석탑의 건립,

금당 기단의 공간 구조, 석등의 조성과 사리장엄구 등의 공예품에서 나타나는 독창성은 백제의 문화 역량이

최대한 발휘된 건축 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미륵사지가 보여주는 백제 문화는 신라나 일본의

고대 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륵사지에는 국보 제11호 석탑, 보물 제236호 당간지주,

보물 제1753호 금동향로,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석등하대석과 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 중요

문화재가 남아 있다. 동원의 구층석탑은 고고학/건축학적인 고증을 통해 1992년 복원되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중에서...]

......

절의 배치는 동·서로 석탑이 있고 중간에 목탑이 있으며 탑 뒤에는 부처를 모시는 금당이 각각 자리한다.

이것이 복도(회랑)로 구분되어 매우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바닥에는 빈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바닥마루의 습기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조선시대 건물터에서 온돌시설이 발견되어 온돌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토된 유물로는 기와·토기·금속·목재 등 다양하며 글자를 새긴 기와도 많이 발견되었다. 서쪽 금당 앞의

석탑은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목조건축의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였던 것을 새롭게 복원하기위해 해체 중에 있다.

전시관에는 미륵사의 복원된 모형이 있다.

......

 

 

두어 군데 포토존이 있다고 해서 따라해 봤다. 시린 가지에 잎새들이 붙어 있을 때는 지금보다 좀 더 나을 듯...

 

국보인 미륵사지 석탑(서원 석탑)은 현재 덧집 안에서 보수 정비 중이다.

 

정비 중인 미륵사지 석탑. 1998년에 시작되어 금년에 완료 예정이라는데, 현재 1층 탑신 조립 중.

복원되어 있는 동원의 석탑에서도 볼 수 있지만, 1층 탑신 내부는 사방의 문으로 서로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체된 미륵사지 석탑의 석재들은 동원 앞쪽을 비롯해서 경내 곳곳에 펼쳐져 조립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동원 석탑, 그 앞에 보물 제236호인 당간지주, 그 주위에 서원 석탑의 석재들이...

 

 

 

 

 

동원의 당간지주.

 

남쪽 회랑지 끝에서 본 모습.

 

복원된 동원 석탑. 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목탑에서 점차 석탑으로 변화되는데,

미륵사지 석탑은 그 과도기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탑의 생김새는 유명한 법주사 팔상전 정도를

떠올려보면 될 듯...

이 석탑은 1991년 복원을 시작하여 1992년에 완료하였고, 하층기단 1변 12.5m, 상층기단 10.5m,

높이는 27.8m이다. 탑에 달린 풍탁은 동원 탑지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금동풍탁을 복제한 것이라고.

탑은 기존 탑 석재와 같은 재질인 익산 황등에서 캐낸 화강암 2천여개와 백제시대 석탑 기단석과

탑신석 32개를 포함해 2,700톤 정도가 사용되었다고.

 

1층 탑신의 내부. 사방이 통하도록 되어 있으나, 체격이 좀 있으신 분들은 다소 힘들수도...

 

정비중인 서탑의 덧집 2층에서 내다 본 모습. 앞 오른쪽이 중원 목탑지이고, 그 뒤가 중원 금당지이다.

 

 

동원 석탑 뒤쪽의 동원 금당지. 아래 두 컷 더...

 

 

 

덧집에서 내려다 본 중원 금당지.

 

[금당지 안내문]

금당은 불상을 모신 건물로 탑과 더불어 사찰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건물이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탑과 더불어 금당을 세 곳에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삼원의 가람 속에

각각 금당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각 금당지는 남쪽과 북쪽에 각각 계단을 둔 이중기단으로 만들어졌다.

기단 내부에는 초석을 받치는 초반석 위에 정방형 기둥 모양의 높은 초석을 놓아 지하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초석의 상면에는 마루를 깔기 위한 나무 보가 놓일 수 있다록 홈이 파여 있다. 각 금당에 지하 공간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단지 경주 감은사지에서는 문무왕이 죽은 후

동해의 용이 되고, 이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에 지하 공간을 두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미륵사지는 삼국유사에 미륵사를 창건한 무왕의 아버지를 용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용 신앙과 관련된

공간으로 볼 수도 있다.

 

 

서쪽 금당지의 모습.

 

그래서 금당 안쪽이 저렇게 넓은 공간으로 이루어졌던게로구나.

 

중원 목탑지의 북쪽 계단. 목탑지는 발굴조사 결과, 1변 18.5m이고, 하부 기초는 350cm 정도 파낸 후

아래부터 150cm 정도 돌을 채워 다지고, 그 위는 마사토와 점질토를 섞어 3~5cm 두께로 층층이 반복적으로

다져올린 판축기법으로 만들어졌다. 기초부 바닥에 습지의 개흙이 보이므로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연못을

메우고 그 위에 탑을 지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원의 탑지와 금당지 사이에 남아 있는 석등하대석. 동원과 중원에 남아 있으며,

서원에서 발견된 석등의 부재들은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동쪽 끝에서 바라 본 남회랑지. 회랑은 중심 건물이나 일정 구역을 둘러싸는 복도 형태의 건물인데,

남회랑에 대한 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남북 길이 69.9m, 동서 길이 190.4m, 폭은 4.8m이다.

 

동쪽 회랑지 모습.

 

동쪽 회랑지의 계단.

 

동쪽 회랑지의 배수구.

 

 

동쪽에서 바라 본 강당지. 강당은 여러 사람이 모여 불경을 강의하고 설법하며, 법회 같은 불교의식을 행하던

장소이다. 강당지는 동서 13칸이며, 길이는 65.6m, 남북 폭은 4칸으로 19.8m이다.

백제시대 석조 기단 건물 중 가장 크면서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다.

 

강당지 계단.

 

서쪽 승방지와 강당지. 승방지와 강당지가 연결되는 부분은 접랑지接廊址라 한다.

 

강당지의 뒤쪽.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승방지. 강당지 북쪽편에 위치해 있가. 동서 길이 133.4m, 폭 14m이다.

 

북쪽 승방지 기단부. 요 부분은 뭔가 좀 석연찮다...

 

북쪽 승방지 상단 모습.

 

강당지와 승방지의 연결 부분.

 

승방지 동쪽 끝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있다.

 

 

 

 

미륵사지의 가장 북동쪽에 있는 이 건물 안에는,

 

조선시대 기와가마 2기가 보존되어 있다.

여기에서 생산된 기와는 미륵사지 북쪽에서 조사된 조선시대 건물에 사용되었다.

 

미륵사지 중간쯤 동쪽 끝에는 고려시대 기와가마가 요런 형태로 조사 후 보존되어 있다. 

연우4년(1317)명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시대 말에 쓰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길고 긴 포스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