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나라답사]

[중국 서안 문화재] 진시황릉과 병마용박물관

파봐야안다2 2015. 12. 13. 21:44

198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시황릉은,

릉이라기 보다는 그냥 하나의 산이다. 

 

산만한 진시황릉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황릉의 관람코스는 저렇게 한 번 올라갔다 내려가면 땡이다.

 

진시황릉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면, 봉분의 평면형태는 상원하방형上圓下方形(윗부분은 원형, 아래부분은 네모)

   이고, 크기는 각 변의 길이가 350m, 높이는 43m인데 처음 쌓았을 때의 높이는 76m나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한서漢書에는 50(2.31×50m=115.5m)으로 나와 있다. 봉분의 주변에는 장방형의 내성을 둘렀는데,

   이 내성은 남북 1,300m, 동서가 578m, 기부의 너비가 10m이다. 내성의 외부에는 다시 장방형으로 외성을

   둘렀는데, 외성은 남북이 2,513m, 동서가 974m, 기부의 너비는 6~7m이다. 성은 모두 토성으로 5~8cm

   층을 한 층으로 한 판축기법으로 축조되었다. 명대의 도목都穆 《여산기麗山記》에는  "시황릉의 내성 둘레가 5,

   외성 둘레가 12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외성에는 모두 합해 10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봉분의 아래에는 길이 460m, 너비 400m, 면적 180,000정도의 지하궁전이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발굴되지는 않았으나 서측의 묘도에서 네 필의 말이 끄는 채회동마차彩繪銅馬車가 발굴된 바 있다. 또 봉분의

   북변인 능원의 중심부분에서는 네 개의 건축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침전寢殿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외성의

   외부에서도 건축물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은 여산원 좌우의 식관食官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판단되었다또한 능원의 동변에서는 17좌의 순장묘가 확인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능의 내부에 있는

   지하궁전은 각지에서 선발된 70만여명의 일꾼들을 동원해 36년이 넘게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진시황릉은 그냥 저렇게만 보고 와야만 하니 당연히 먼길을 찾아 간 노고에 비해 아쉬움이 무지하게 크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다음 코스인 그 유명한 병마용갱(병마용박물관)이다.

 

병마용박물관은 서안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38km 정도 떨어져 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진시황은 죽음에 대비해 재위에 있는 30여년 동안 50에 달하는 능역에 엄청난 양의 부장품과 병마용들을

   매장하였다이것들 가운데 일부가 19743월 우물을 파던 농부들에 의하여 발견되어 목제 전차 20, 전차를

   끄는 도마陶馬 100마리, 기병용騎兵俑 도마陶馬 29마리, 각종 무사용武士俑 1,400, 청동병기 10,000여점

   등이 발굴되었다이 병마용 갱은 여산릉으로부터 동쪽으로 1.5km 지점에 있다.

모두 4개의 갱이 발굴되었는데, 발굴 후 전시관이 마련되어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관은 원형의 돔식극장,

   1호 갱, 2호 갱, 3호 갱, 동차전시관, 진시황릉 문물진열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호 갱이다.

 

제1호 갱은 동서가 긴 장방형으로 길이 230m, 너비 62m이다. 갱의 사방에는 각각 입구인 사파문도斜坡門道

   5개씩 있다. 갱의 동쪽 입구가 정문에 해당되고 갱의 양끝에는 각각 길이 60m, 너비 1.6~4.8m의 복도가

   마련되어 있으며, 갱의 남북에도 각각 길이 180m, 너비 2m의 복도가 있다. 또한 이 네 개의 복도들 가운데는

   동서로 9개의 지하통로를 만들었다. 병마용은 9개의 통로, 네 면의 복도, 그리고 지하통로에 배치되어 있는데,

   복도에는 보병용이, 지하통로에는 전차와 보병용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한마디로... 엄청나다.

 

사진들은 2007년도 상황이니 지금은 저 뒤의 도용들도 발굴이 되어 서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은 제2호 갱이다.

 

제2호 갱은 1호 갱의 동쪽 끝에서 북으로 약 20m 지점에 있다. 갱의 전체 모양은 곡자 형태이다. 동서로 가장

   긴 곳이 124m, 남북으로 가장 넓은 곳은 98m이며, 깊이는 5m, 전체 면적은 6,000이다. 갱의 동서 양쪽에

   각각 3개의 사파문도가 있고 북면에도 1개의 사파문도를 두었다.

갱의 내부는 복잡하지만 대략 4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1구역은 갱의 동북쪽 모퉁이로 네 면에 3.2m

   복도가 있고 복도 안에는 서서 활을 쏘는 병용이 있다. 복도 사이에는 4줄의 지하통로가 마련되었고 그 안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활을 쏘는 병사를 배치했다. 2구역은 갱의 남쪽 부분으로 동서 양 끝에 긴 복도가 있고 그

   안에는 8줄의 지하통로가 마련되었다. 긴 복도에는 병사용이, 지하통로에는 목제의 전차들이 배치되었다.

   3구역은 갱의 중앙에 있으며 동쪽 벽과 1구역 사이가 흙벽으로 막혀 있다. 그러나 벽 위에 문을 두어 1구역과

   통하도록 되었다서쪽 끝에는 복도가 하나 있고 중앙에는 동서로 3줄의 지하통로를 두었다. 지하통로에는 전차와

   보병, 그리고 기병을  혼합 편성한 직사각형의 군진을 배치하였다. 4구역은 갱의 북쪽부분으로 동쪽 끝이

   1구역과 흙으로 막혀 있지만 문을 통해 통하도록 되어 있다. 서쪽에 복도가 하나 있고 중앙에 동서로 3줄의

   지하통로가 있다. 지하통로 안에는 기병용이 나란히 서 있다. 4개의 구역은 독립되어 있지만 각각의 기능이

   합쳐져 하나의 조직적인 군진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제3호 갱이다.

 

제3호 갱은 1호 갱의 서쪽 끝에서 북쪽으로 25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길이는 17.6m, 너비는 21.4m,

   면적은 520이다. 갱의 구조는 복잡한 편인데, 동쪽에 사파문도가 하나, 들어가면서 차마방車馬房이 하나, 전차가

   1대 배치되어 있다. 차마방의 좌우 양쪽에 각각 남북방향의 긴 복도가 있다. 2개의 복도와 협부옥 내부에는 무사용

   64개가 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되었다. 이 무사용은 의장용인 동창을 가지고 있어 이들은 호위병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3호 갱은 지휘부로 추정되고 있다.

 

 

 

 

 

 

 

4호 갱은 답사 당시 미완성이었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도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음은 동차전시관이다.

 

 

 

 

 

진시황은 살아 생전에는 백성의 고혈을 빨아내는 썩 좋지 않은 왕이었음이 분명한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는 누가 뭐래도 중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수입을 챙기게 해 준 좋은(?) 왕임이 분명한 듯...

 

이 포스팅 역시 어언 거의 9년 전 정도에 다녀온 기억들이기 때문에, 사진도 구리고, 내용에서도 지금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봐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