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문화재]/국보

[익산 문화재]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파봐야안다2 2015. 11. 22. 21:11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은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의 왕궁리 유적에 자리해 있다.

1997년 1월 1일 국보로 지정된, 백제계 양식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왕궁리 오층석탑은 왕궁리 유적의 한 가운데에 솟아 있다.

 

 

[왕궁리 오층석탑 안내판]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이다. 높이가 9m인 이 석탑은 단층 기단, 얇고 넓은 옥개석, 3단

   옥개받침 등이 특징적이다. 1965~1966년에 해체 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다.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에서는 금강경판 19장,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 같은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

   석탑 밑에서는 가로 16.8m, 세로 12.7m인 건물 기초가 발견되었다. 이 건물 기초를 보면 이 석탑은

   본디 목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탑 주변에서는 '왕궁사王宮寺', '관궁사官宮寺', '대관관사大官官寺',

   '대관궁사大官宮寺'라는 글자가 적힌 통일신라시대 명문기와가 여럿 출토되었다. 지금도 이 탑의 축조

   시기를 놓고, '백제, 통일신라, 고려 초'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진 익산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장식이 남아있다.
지붕돌이 얇고 넓어 빗물을 받는 낙수면이 평평한 점이나, 탑신부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은 점 등

   백제석탑의 양식을 일부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언제 제작되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으나

   1965년 보수작업 때 기단의 구성양식과 기단 안에서 찾아낸 사리장치의 양식이 밝혀지면서 그 시기가

   비교적 뚜렷이 밝혀졌다. 즉, 백제의 옛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 석탑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유물들은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과정에서 지금의 석탑에 앞서 목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이 탑 밑부분에서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다.

 

(*본문 중 석탑 발견 국보 제123호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국립전주박물관의 오기인듯 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느긋한 감상보다는 사진찍기에만 급급했다.

그래서 다시 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저 5층 탑신의 '주○○'라는 낙서는 언제부터 있었던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