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문화재]/사찰

[청주 문화재] 잘 안 알려진 보물창고. 청원 안심사

파봐야안다2 2014. 3. 16. 21:40

  청주와 청원지역 문화재를 찾다 보면 꼭 언급되어야 하면서도 잘 모르는 사찰이 있는데,

바로 청원군 남이면 사동리 구룡산에 있는 <안심사>입니다.

  그리 으리뻑쩍 대단히 큰 사찰이 아닌 정말 아담하고 조용한 사찰이지만,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등을 품고 있는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이곳으로 향하다보면 아주 옛날 청주와 공주를 잇던 구도로가 여기였겠구나~하는 이정표들이 세워져 있는 구도로를

따라 어느 정도 따라가게 되고, 절 근처까지 가면 여기가 청주 시내에서 불과 십여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란

생각이 싹 없어질 정도로 한가롭고 여유있는 시골 풍경이 펼쳐집니다. 절의 이름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안심사로 진입하는 입구 부분입니다. 참 좋은 말이 보이네요. "참 좋은 인연입니다"

  여기서 한 70m 정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으로 주차장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주차장 같은 공간에서 찍은 안심사 전경입니다. 저 위에 컨테이너가 있는 곳에도 몇 대 정도의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공간이 또 있습니다.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왼쪽이 중심사역으로서, 대웅전, 영산전, 산신각 등이 있고, 오른쪽 건물들은 요사채 공간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보면, 최근에 지어진 대웅전 앞에 있는 요사채가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약수물이 흐르고 채워지고 다시 흐르고 다시 채워지는... 인공연못이긴 하지만 물소리가 운치는 있더군요.

 

  1982년 경까지 대웅전 안에 걸려 있던 판목현판의 안심사 고적 연대표에 따르면, 안심사는 신라 혜공왕 11년(775)

진표율사가 창건해 제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安心寺라 불렸고, 고려 충숙왕 12년(1325)에 원명국사가

중건했으며,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비로전(지금의 영산전)을 중건했고, 인조 4년(1626)에 송암스님이 거의 허물어진

절을 다시 중건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답니다.

 

  대웅전과 괘불 모습입니다. 대웅전은 1626년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고, 처마 끝 기와에서 '강희십일년임자'라는

글씨가 발견되어 현종 13년(1672)에 기와를 다시 올린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괘불은 국보로 지정된 실물은 아니고 사본입니다.

  

  대웅전으로 다가가다 보니 윗마당과 아랫마당을 연결하는 배수로가 참 이색적이고 이뻐서 찍어 봤습니다.

 

  대웅전 정면의 모습입니다. 정면 3칸이고, 보물 제66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약간 측면으로 돌아보면, 측면이 2칸이지요. 그런데...

  1979년 해체 수리 복원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원래는 정면 3칸에 측면도 3칸의 건물이었다가 측면 뒤쪽의 1칸이

줄어들고 지붕도 팔작지붕에서 지금과 같은 맞배지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맞배지붕에 풍판까지 막혀 있는데 화려한 공포가 안쪽으로 숨어 있어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반대쪽 정측면 모습이구요.

 

  뒤쪽을 보면 중간에 뭔가 더 어색해 보입니다. 그래도 줄어들었건 어쨌건 보물이니만큼 그것 또한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일부이니 어색하다는 말보다는, 그냥 독특하고 이색적이라고 표현할렵니다.

 

  측면이 줄어들면서 후불벽을 그대로 외벽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생긴 이색적인 형태 되겠습니다.

  뭔가 이빨이 빠진듯한... 아마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례일지도 모르겠네요.

 

  대웅전 옆에서 바라 본 영산전 모습입니다. 

 

  영산전의 모습입니다. 영산전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된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광해군 5년 건립 당시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이었는데, 최근에 나한을 모시는 영산전으로 바뀌었답니다.

  저 안내문의 글씨는 거의 다 바래져서 내용을 알 수 없어, 옆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찍어서 정보를 검색했지요.

 

  영산전의 정면 모습입니다. 정면 3칸입니다.

 

  영산전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 화재진압을 위한 소화시설이 있네요. 아마도 남대문 화재 이후에 사찰에 이러한

장비들이 보강된 듯 한데... 사용할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자연석을 그대로 초석으로 써서 기둥을 올린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런 자연석 초석이 참 좋더군요.

 

  영산전의 측면 모습입니다.

  측면 2칸이고, 영산전도 대웅전처럼 맞배지붕이면서 측면에 화려한 공포가 있네요. 대웅전 중건 당시 만들어져서 

그런지 영향이 없진 않았나 봅니다. 

 

  영산전 지붕 한가운데에 새 한마리가... 저 새는 아마도 솟대에 있는 새처럼 물새이고, 건물의 화재를 막아 안녕을

바란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안심사에 있는 또 하나의 문화재. 석가세존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세존사리탑입니다.

  탑비와 함께 나란히 대웅전 옆에 있는 산신각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신라 진표율사가 안심사를 세울 때 석가세존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가 여기

구룡산에서 발견되어 고종 18년(1881)에 구천동에 옮겼던 것을 다시 광무 4년(1900)에 안심사로 옮겼다고 합니다. 

  8각의 아래모룻돌 위에 간략하고 단아한 종 모양의 부도가 올려져 있습니다.

  사리탑의 상륜부 모습입니다. 28개의 구슬문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8각 모룻돌의 윗면 모습인데, 십자형의 홈이 있네요. 홈 아래로 다른 면들과 다르게 하얀 것을 보니 물이 고이는 것을

막기 위해 배수로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리탑은 요 귀여운 동자승 삼총사가 지키고 있더군요.^^

 

  사리탑 옆에 불상인데... 미안하지만 웃음이 먼저 나오는... 어느 SF영화에 등장한 외계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디서든 모두 수습된 것들의 조합일텐데, 뭐라 딱히 할 말이... 그래도 불두의 조각 솜씨도 예사롭지는 않은 듯...

 

  사리탑 쪽에서 본 사찰의 중심 사역 전경입니다.

 

  저 괘불탱은 모사본입니다. 원래 국보 제297호인 영산회괘불탱은 영산전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가로 4.62m, 세로 7.41m이고, 하단에 순치 9년(1652) 임진사월에 안심사 괘불로 봉안한다는 기록이 있으며,

보관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합니다. 석가탄신일에 기회가 되면 실물을 함 보고 싶네요.

 

  사본임을 알고 열 받은 아이언맨... ㅎㅎㅎ

 

  봄날 꽃이 피고 신록이 살짝 우거질 때쯤이면 더 이쁜 유람이 될 듯 합니다. 다시 가봐야지...